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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늘의 사색(채운)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딧불의 잔존>(길)

 

“과연 세계는 우리의 현실적인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죄인들’이 열망했던 것처럼 그렇게 총체적으로 예속되어 있는가? 그렇게 상정하는 것은 그들의 기계가 우리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는 것을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검은 밤이나 서치라이트의 눈부신 빛만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패배자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주의 기계가 어떠한 여지도 저항도 없이 자신의 업무를 완수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만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방의 공간, 가능성의 공간, 미광의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공간을 보지 않는 것이다. (...)

종교적 전통만이 인간적 사태의 모든 묵시록과 모든 파괴를 넘어서는 구원을 약속하는 법이다. 잔존(殘存)은 단지 내재적인 역사적 시간에만 관련된다. 잔존은 어떠한 구원의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그리고 잔존의 계시적 가치는 오로지 빈틈을 포함하고 조각나 있을 따름이다. 잔존은 어떠한 부활도 약속하지 않는다. 잔존은 단지 어둠 속을 지나가는 미광일 뿐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강한 ‘모든 빛의 빛’으로 도래하지 않는다. 잔존은 우리에게 파괴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고 가르쳐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최후의’ 계시나 ‘최종적’ 구원이 우리의 자유를 위해 필연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아도 된다.”

 

연말에 접어들자 도심의 대형건물들은 어김없이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현란한 야경과 사나운 서치라이트에 눈먼 자들의 도시. “서치라이트는 모든 사회적 공간을 포위”했고, 사람들은 쇼윈도의 상품처럼 서치라이트를 받으며 “환금가능한 스펙터클”이 되기를 욕망한다. 다른 한편에는, 종말과 파괴를 향한 갈망이 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묵시록적 블록버스터의 세계는 현재에 대한 지독한 허무와 패배감의 반영이 아닐까. 스펙터클한 빛이 되거나 스펙터클하게 사라지거나! 그러나 디디-위베르망은 잔존을 말한다. 강한 빛 속에서 사라진,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미미한 반딧불이에 대해. 출구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새로운 ‘전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은 하나, 잔존하는 반딧불이들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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