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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몽매를 바로잡는 역동의 기철학,정몽正蒙


 


1. 유가, 불의 세상에서 기지개를 켜다

 

  육조(六朝)에서 수 당에 이르는 칠백년은 명실상부한 불가와 도가의 세상이었다. 불의 심오한 철학적 사유는 당시 사대부와 문벌귀족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오대(五代)에 이르자 혼란스런 현실 상황을 피해 사람들은 더더욱 불교와 도교에 빠져들었다.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한 불교의 구복(求福)신앙과 도교의 불로장생 신선술이 훌륭한 도피처가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경전의 자구 해석에만 매달려 있던 유가의 훈고학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사상의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대의 혼란이 막을 내리고 송대(9601279)에 이르자 세상은 달라졌다. 송의 유학 장려 정책은 유가들을 한껏 고무시켰고, 북방 이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한()민족 중심의 민족주의적 경향이 고조되었다. 결정적으로 요()와 서하(西夏)와 맺은 굴욕적인 조약 체결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에 유가들은 현실 사회 문제에 아무런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도 불을 비판하고 시대 현실에 걸맞는 새로운 철학담론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 기()로 우주와 인간과 윤리를 설명한 횡거 장재(張載, 1020~1077)가 있다.


 

저 적멸(寂滅)을 논하는 자들(불교도)은 윤회를 벗어나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 하며, 삶을 좇아 자기 몸뚱이에 집착하는 자들(도교도)은 개체에 고정되어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두 부류는 비록 서로 다르지만 도를 상실했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정몽正蒙』「태화太和)


 

  한편에는 해탈을 꿈꾸며 자신의 존재와 이 세상을 벗어날 생각만 하는 불교도들이, 다른 한편에는 일신의 삶에만 집착하여 불로불사를 꿈꾸는 도교도들이 있다. 오랜 시간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했던 장재는 그들의 사상으로는 현실을 돌파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어떻게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이 사회 속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인간상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있다. ()는 도 불의 세계관을 넘어 세계를 역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소환된 개념이었다.

인간은 오랜 시간 농사를 짓고 자연을 관찰하면서 지식이 축적되자 자연과 사회 현상 이면에 있는 본질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일까? 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시드는가? 눈에 보이는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리()와 기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북송오자(北宋五子)’에 의해서다. 이후 중국의 사상계는 기와 리의 개념 변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해 북송오자로 명명된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소옹(邵雍, 1011~1077), 장재,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기존의 유학에 우주론을 도입하여 도학(道學)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들로, 각자의 방식으로 리와 기를 이해하고 운용하였다. 주희는 주돈이의 태극개념을 가져와 우주의 근원으로 삼았고, 정호 정이 형제의 리 개념을 가져와 우주 본체로, 장재의 기론을 받아들여 기를 우주를 구성하는 질료로 사유함으로써 유가의 우주론을 종합했다. ‘성리학’, ‘송명이학’, ‘북송도학등으로 명명하는 것은 이 · 기 개념을 중심으로 완성된 유가의 형이상학인 것이다.

이 중 장재는 가장 정밀하게 기론을 펼친 사상가로 현상과 본체를 기 개념 하나로 통합시켰고, 리를 기가 만물을 생성하는 법칙으로 보았다.

 

  

장재-1.jpg 2. 장재의 우주 - 크나큰 조화로움(太和)이여!

 

태허에는 기가 없을 수 없고 기는 모여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으며, 만물은 흩어져 다시 태허가 되지 않을 수 없다.(정몽』「태화)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자. 눈앞에 펼쳐지는 온갖 것들. 도대체 저것들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장재는 ()’를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기가 모이면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형태를 갖는 만물로 나타나고, 기가 흩어지면 무형의 태허로 돌아가 보이지 않게 된다. 태허란 형체가 없는 기의 본체. 즉 기와 태허는 같은 몸 다른 이름일 뿐으로, 마치 물에서 얼음이 얼고 녹는 것과 같다.”(정몽』「태화) 장재는 세상을 무형의 본체와 유형의 현실세계로 구분하지만, 기의 취산(聚散)으로 형태를 갖거나 갖지 않을 뿐 없음[]’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태허가 곧 기다(太虛卽氣)’라는 장재의 주장은, “본체인 허[]가 기[]를 낳는다는 도가의 주장과, 모든 것을 환화(幻化), 실체 없음으로 보는 불가의 주장을 모두 격파한다. 장재가 기가 곧 태허라고 한 이유는 바로 도 · 불의 를 비판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는 어떻게 취산하는가? 그것은 기가 하나의 사물이면서 두 몸(一物兩體)”이기 때문이다. 기에는 서로 대립하는 음()과 양()이 있는데, 둘이 있으면 모름지기 감응이 있다.”(정몽』「신화神化) 컵에 따뜻한 물과 찬 물을 섞어보자. 곧 대류작용이 일어나 따뜻한 물은 위로 찬물은 아래로 움직일 것이다. 움직임은 이와 같이 대립적인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의 대립은 단절된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내포하는 상관성을 갖는다. 완전히 분리된 대립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침투하여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재는 기를 일물양체로 설명함으로써 사물이 운동 변화하는 원리를 그 내부에 두었다. 달리 말하면 이는 신화(神化), 하나이므로 신묘하고, 둘이므로 변화한다.” ()은 본체요, ()는 작용이지만 기 차원에서는 같다. 요컨대 태허즉기가 유적(有的) 세계의 본질이라면, 신화는 작용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립하면서 통일되어 있고 계속 변화하는 운동성을 가지는 우주의 모습을 장재는 크게 조화롭다[太和]고 하였다.

  현대적 관점에서 장재의 기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고정된 형체를 갖지 않고, 운동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물질이라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거시세계의 물질과 운동으로는 기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미시세계의 원자, 분자, 소립자를 다루는 현대 양자역학과는 접속 가능하다. 양자역학의 파동-입자개념은 물질과 운동을 동시적으로 사유하기 때문이다. 이는 장재의 기 개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미 천 년 전에 장재는 파동-입자개념을 로 선취했던 것은 아닐까?



3. 천인합일(天人合一), 존재론에서 수양론, 윤리론으로

 

  장재의 기론은 단순히 우주론으로 그치지 않는다. 만물은 기가 모여서 생긴 것이므로 사람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에 따른 본성[]을 가진다. 앞서 기란 일물양체라고 하였다. 사람은 우주적 차원에서 보편적인 천지의 본성을 갖지만, 몸을 받고 태어나기 때문에 각자 다른 기질의 본성을 갖는다. 하여 사람마다 강함과 유함, 느림과 급함, 재주 있음과 없음의 편차가 생기고, 감정을 터뜨리고 욕망하는 치우친 존재가 된다. 송명이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천지지성[天地之性]’기질지성[氣質之性]’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형체가 있은 뒤에야 기질의 성이 있으니 잘 돌이키면 천지의 성이 그대로 보존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기질의 성을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몽』「성명誠明)


 

  형체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나 아닌 것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같은 구분으로 인해 욕망과 편견이 생기고 를 고집하게 되고, 이 때문에 본래의 지고한 선[천지지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장재는 기질지성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겼고,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적 질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치우친 기질을 넘어 우주적 차원의 본성을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오직 선()인 하늘의 덕, 천지지성을 되돌릴 것인가? 장재는 벼락같이 말한다. “힘써 학문하여 치우진 너의 기질을 바꾸라!” 공부와 수양을 통해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욕망을 억눌러 잃어버린 본성을 되돌리라는 것. 수양을 통해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는 저 같은 분별을 넘어 우주와 합일하는 경지, 천하의 한 사물이라도 나 아닌 것(非我)’은 없다고 여기는 경지다.


 

건은 [하늘로서] 아버지라고 불리고, 곤은 [땅으로서] 어머니라고 불린다. 나는 여기서 조그만 모습으로 그 가운데 뒤섞여 있다.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을 내 몸으로 삼고, 하늘과 땅을 이끌고 가는 것을 내 본성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난 형제이고, 만물은 나와 함께 있[는 동료]. 천자는 우리 부모의 장자요, 그의 신하는 장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어른을 모실 때는 자기 어른을 모시듯 하고, 약하고 외로운 사람을 돌볼 때는 자기 아이를 사랑하듯 한다.(정몽서명西銘)


 

  천인합일은 존재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온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사람들은 모두 내 형제가 되고, 세상만물은 내 동료가 되며, 윤리는 그로부터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존재론에서 심성론, 윤리론을 도출하는 장재의 기 개념은 이후 유학 사상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몽 서명-1.jpg

서명 [西銘] : 장재가 지어 서재(書齋) 서쪽 창에 걸어놓은 명(銘)



4. 하늘을 내 안에 구현하라!

 

  장재의 우주론은 를 넘어 나 아닌 것으로 나아가게 하는 천인합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그의 천인합일은, 도교의 양생술 중의 하나인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통해 우주의 기와 나의 기가 통하는 그런 개인적 합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관계의 문제다. 학문과 수양을 통해 되돌려야 하는 천지지성은 하늘의 덕이자 선 그 자체로서, 그것은 인의예지라는 덕목에 다름 아니다. 즉 장재의 천인합일이란 자신의 이기(利己)에 갇히지 않고 사회 속에서 관계의 윤리를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장재가 살던 북송 중기, 잦은 이민족의 침입, 정치적 혼란, 폭발적 경제성장으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새로운 존재론과 윤리론을 요청했다. 장재는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현상세계를 떠난 초월에의 추구를 지양하고, 현실을 긍정하고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만주족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을 때, 황종희, 왕부지 같은 명말의 지식인들이 장재의 기론에 주목한 것도 그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꺾인 기를 다시 살리고, 소진된 기를 보충하고, 막힌 기를 뚫어야 한다는 우리 시대의 담론은 그저 자기 한 몸 보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뿐, 어디에도 존재에 대한 이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공통의 윤리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왜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는가? 왜 이 우주와 세계에 대해 사유해야 하는가? 존재에 대한 이해에서 윤리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만물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신화시대의 인간들은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살기 위해 동물을 죽여야 했지만 동물을 단순히 먹을 것으로 대상화하지 않았다. 지금 너는 나에게 먹히지만 다음에 태어날 때는 내가 너에게 먹히겠다! 그렇기에 죽이는 행위도 먹는 행위도 먹고 난 다음 뼈를 다루는 행위도 성스러운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관계성에 대한 망각 속에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물질적 가치로 환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결과 우리는 그 무엇과도 또 그 누구와도 이해(利害)를 떠나서는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윤리란 결국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유로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7년간의 고심과 사색 끝에 나온 장재의정몽은 천년 후 좁디좁은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는 우리의 무지몽매[]를 바로잡는[] 텍스트이다

  • jerry 2014.04.15 00:50

    오! 언니 고생하시었소... 그 피곤에 쩐 얼굴이...생각나오.. 흑흑... 나도 한 몫하였지... 그래서 이쁘게 편집해 줬쟈나 케어해 주쟈나

  • 공가 2014.04.15 14:54
    윤차장의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그 기품이 느껴지는 듯하구료. 그 동안 공부하면서 알듯 모를 듯 무지 헤맸는데, 읽고나니 머릿 속이 환해지는 듯~~ 고생했네... 그대의 공부길이 앞으로도 뻥 뚫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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