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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향한 지혜의 노래
세친,『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1. 원효의 깨달음

   『송고승전宋高僧傳』 「당신라국 의상전唐新羅國義湘傳」에는 원효대사가 깨달은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원효가 어젯밤 달게 마신 물이 사실은 해골 썩은 물이었다는 드라마틱한 각색을 겪은 이 일화는 사실 이렇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어느 날 밤 비바람을 만난 두 사람이 움집을 찾아 들어가 쉬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뿔싸, 그것은 움집이 아니라 오래된 무덤이었다! 원효는 이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탄식하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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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생겨나 여러 법들도 생겨남을 알겠다. 마음이 없어지면 움집과 고분이 둘이 아니로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고 만법이 오직 식이로다. 마음 밖에 법이 아니니 어찌 따로 구하리.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으리라 
知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 龕墳不二. 又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我不入唐”

   이 일로 원효는 유학을 포기한다. 그가 당唐나라에 가서 배우려고 했던 것은 현장법사가 인도에 직접 가서 가져온 불법佛法이었다. 현장은 교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유식교의唯識敎義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자 인도로 떠났다. 현장이 목숨을 걸고 인도까지 가서 알고 싶었던 것이자, 원효가 하룻밤에 깨달은 그것은 바로 유식무경唯識無境, 즉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식일 뿐이고, 식을 떠난 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원효(元曉, 617년 ~ 686년)


2. 유식唯識, 오로지 식뿐!

아와 법의 가설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상이 생겨나나, 그것은 식에 의해 변화된 것이며, 변화하는 식은 셋뿐입니다. 그 셋은 이숙식이며 사량식이며, 요별경식입니다. 
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 彼依識所變 次能變唯三 謂異熟思量及了別境識 (1~2송)



   세상의 모든 것은 가설假設된 것, 즉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는 폭탄선언으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은 시작한다. 유식삼십송은 총 30송으로, 1송은 5字씩 4句로 이루어졌다.  “30송 600자에 지나지 않지만 천고에 초절한 일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식의 교리를 압축적으로, 그러나 매우 치밀하게 분석한 텍스트다. 
  저자 세친(世親바수반두, 316 – 396)은 “어떤 괴로움이 생기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식識을 연(원인)으로 한다. 식이 멸하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숫타니파타)는 붓다의 말씀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불교 최고의 논사다. 세친은 모든 괴로움을 멸하는 길(열반)을 식에서 찾았다. 이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유식삼십송』 에서 ‘식전변설識轉變設’을 수립하고 유식무경의 이치와 8식의 존재 양상을 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친이 말한  식전변識轉變이란 무엇인가?
  유식학파는 나를 포함한 세상만물이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식識의 전변轉變에 의해서 생겨난 상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저기 장미가 있고, 여기 내가 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장미’라고 부른다. 이것이 인식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유식에서는 이런 상식을 부수기 위해 ‘일수사견一水四見’의 비유를 든다. 우리는 물을 보면 마시거나 씻을 수 있는 것을 본질이라 여기지만, 물고기에게는 물이 생활터전이다. 그런가 하면 아귀餓鬼에게는 물이 고름으로 보이고, 천신天神들에게는 보배궁전으로 보인다. 이 중 어느 하나를 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물고기가 마시는 물을 집으로 착각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 “무엇”이라고 할 만한 실체적 본질(自性)이 있는데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사물의 자성이 없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물의 영상, 촉감, 향기, 소리, 맛 등 대상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기억(의식) 작용일 뿐이다. 유식에서는 이 과정을 식識의 작용(식전변)이라고 말한다. 불교 수행자들은 요가 수행 중에 표면의식의 심층에서 아뢰야식을 발견했고, 유식 논사들은 그 체험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냈다. 
   유식에서는 대상을 출현시키는 의식, 즉 기억하고 판단하는 작용을 “요별경식(제6식)”이라 하며, 이런 표면의 의식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심층의 의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수행자들은 선정 수행의 과정 중에 모든 마음의 움직임이 사라지는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를 멸진정滅盡定이라 한다. 이럴 때는 의식은 물론이고 자아에 대한 생각도 사라진다고 한다. 멸진정에 든 수행자는 의식이 다 멸한 것 같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깨어나면 다시 일상의 의식이 생기한다. 그렇다면 멸진정 상태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식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제 8식인 아뢰야식이다. 유식에서는 이 아뢰야식을 근본식이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말하자면 개체의 본질적인 생명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듯 끊임이 없다고 하여 『유식삼십송』에서는 아뢰야식을 “폭류처럼 흐른다”고 말한다. 
   이 아뢰야식을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 제 7식인 말나식이다. 이는 외부와 구별되는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나”라고 의식하는 식이다. 아뢰야식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항상 나와 세계를 구분하고 분별한다는 점에서 사량식思量識이라고도 한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본래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지만, 폭포의 물을 받아 그릇에 담으면 그릇 모양대로 물이 형태를 갖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본래 물의 모습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대상으로 성립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는 자신을 주체로 세우게 되는 것이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으로부터 인식 주체와 대상을 성립시킨다면, 우리의 기억 작용인 제 6식은 이 말나식이 전변한 결과다. 이러한 식작용의 결과 우리는 나와 만물이 자성을 가진 실체로 존재한다고 여기고 언어적으로 분별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식작용에 의해 환영을 실체라고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오직 식일 뿐이다!


3. 실체 없는 사물들의 존재론, 삼성설三性設 

가지가지 허망 분별에 의해서 온갖 사물을 실재한다고 분별하나 그것들은 허망분별에 의해서 집착된 것일 뿐 그 자성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의타기성 依他起性은 분별이며 분별은 인연에 의해서 생깁니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타기성에서 항상 변계소집성 遍計所執性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다르지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마치 무상 등이 모든 흐름 등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원성실성을 보지 못하면 의타기성을 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자성 그 자체에 의지하여 다음의 세 가지 무자성無自性을 세웁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언어표현을 넘어서 모든 법은 자성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20~23송)



   육신을 가지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분별없는 폭포수에서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겼다는 얘기다. 폭포수는 ‘장미’라는 그릇에도, ‘물고기’라는 그릇에도 담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장미와 물고기 자체인 것은 아니다. 앞서 봤듯이 이런 대상은 식전변에 의해 만들어진 상일 뿐이다. “나는 저 꽃이 장미라고 안다” 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있고 대상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분별이다. 유식에서는 이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 한다. 변계소집성은 말 그대로 경계를 짓고 집착하는 성질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언어다. 뭔가를 생각할 때 언어 없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런데 대상을 이렇게 언어화하고 나면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정서도 고정된다.  때문에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로 파악된 존재, 즉 ‘변계소집된’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타기依他起”하고 있다. 의타기란 “이것이 있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 생김에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는 붓다의 연기설을 유식의 입장에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판단하기에 나와 장미는 독립된 개체로 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장미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바람과 벌과 지나가는 옆 사람과 울타리, 심지어 내가 적록색맹이 아니라는 사실이 인연조건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 모든 연기적 조건 하에서 내가 장미를 보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매순간은 온 우주의 만물들이 이루는 여러 겹의 인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되는 우리의 의식은 이러한 세계의 실상을 분절하고 대충 이어 붙여 “나는 장미를 본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모든 것이 상호의존하는 연기 조건 속에서만 나는 장미를 본다.”
  만물이 의타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만물이 자성을 갖지 않는 공空한 존재라는 말이다. 유식에서는 이를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한다. 공하기 때문에 연기적으로 존재한다. 변계소집으로 장미를 보든 의타기적으로 장미를 보든 장미는 장미라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미는 언젠가 시들어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장미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생주이멸한다. 그런데 변계소집으로 사물을 보게 되면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하는 데서 번뇌가 생겨난다. 변계소집성을 진실로 여겨 허망분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인연발생적 존재조건을 깨달아 고통의 근원에서 벗어날 것인가. 유식이 제기하는 문제다.  
   공空은 무無가 아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곧바로 ‘공’이라 하면 ‘없다’라고 여길 것이 뻔한 중생에게 유식은 눈앞에 있는 것은 가설된 환영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면서도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의타기성 때문임을 인식하라고 말한다. 유식은 있는 것도 아니고(실체가 있는 게 아니므로) 없는 것도 아니라는(의타기적으로 존재하므로) 비유비무非有非無의 공성空性을 이해하는 지혜이자, 유무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붓다의 중도中道를 증명한 최고의 이론이라 하겠다. 
   우리는 애착과 혐오, 자부심과 열등감 등 온갖 감정과 행위들 때문에 마음이 동요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유식학파는 이 불편한 마음을 해소시키기 위해 세계의 실상을 바로 관찰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가? 스스로 만들어낸 영상에 집착하고 갈망하기 때문이다. 『유식삼십송』은 이런 영상을 계속 만들어내는 식작용에 대해 설명하고 나와 세계에 대한 바른 관찰로 이끄는 지혜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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