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떠나는 배움의 여로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허무주의와 함께 도래한 소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 승전한 프랑스에 한 편의 소설이 귀환한다. 1913년에 제1부가 발표되었으나 독자들과 평단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했던 작품, 바로 사교계의 한량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쓰고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2부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였다. 장황하고 화려한 문체, 벨 에포크의 향락 문화만을 다룬다는 비난은 사라졌다.「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는 그 해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프루스트가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주제와 문체를 바꾸기라도 했던 것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당대의 시대상황 때문이었다. 승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은 1차 세계대전의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나올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전신, 전화, 기차가 삶을 혁신시켰듯, 이 전쟁도 새로운 기술과 급진적인 사상을 낳으면서 진보한 문명을 펼쳐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가공할만한 속도와 막강한 범위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쏟아져 내리는 화염은 이러한 기대를 무참히 앗아가버렸다. 도처에 만연한 죽음! 근대 문명의 ‘미래’란 편리하고 윤택한 삶이 아니라 허무한 파국이었던 것. 프루스트가 부활한 것은 바로 이런 허무주의의 한 가운데였다.

 

2. 프루스트, 잃어버린 문체를 찾다

 

「스완네 집 쪽으로」와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 」사이에 특별한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프루스트는 애초의 설계도를 유지했다. 실제로 동시대 사람들이 거대한 허무감에 잠식당하고 있었을 때, 프루스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전시 출판계의 불황이나 지인들의 전사 소식에도 조급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으며, 어떤 환경에서든 자신의 원고를 쓰고 수정하고 편집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에게는 죽음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고 하는 허무주의 그 자체가 허무해 보였다.

프루스트가 허무주의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1905년, 존경하는 어머니가 요독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가 사후에 더욱 큰 존재감으로 자신의 삶 안에 자리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애로운 모성 그 자체이자 뛰어난 학식과 풍요로운 감성의 소유자인 이 여인은 죽음을 통해 아들과 더 깊은 교감을 나누는 존재가 된 것이다. 프루스트는 긴 애도의 기간 동안 죽음으로 회수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계를 생생히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모작(模作)실험이었다. 감히 자신의 상처와 번민을 쓸 여유가 없었던 그는 타인의 문체를 모방하면서 글쓰기의 본질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 프루스트는 ‘르무안느 사건’이라는 당대 유명한 다이아몬드 사기 사건을 소설가 발자크와 플로베르, 사회학자 생 시몽, 철학자 에른스트 르낭 등의 문체를 흉내내 표현해보았다. 그 결과, 하나의 객관적 사실도 그것을 보는 시선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현실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본다는 것은 보는 그 시점에서 사건을 고유하게 체험하고 해석하는 일! 그래서, “실은 단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몇 백만의 세계, 인간의 눈동자 및 지성과 거의 동수인 세계가 있고 그것이 아침마다 깨어난다”(되찾은 시간)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우리는 세계를 언제나 제한적으로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프루스트는 인생이 무상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죽음이 삶의 모든 순간을 무(無)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아니라, 우리가 몇 백만이나 되는 다른 세계들을 순간순간 잃어버리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루스트는 발자크와 플로베르의 문체를 면밀히 연구해서 거의 그들처럼 말하고 쓸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유한 ‘발자크’, 절대적인 ‘프루스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체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과연 글이 태어나는 장소는 어디인가? 글은 한 개인의 고립된 자의식 속에서 잉태되지 않는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글을 쓰면서 수많은 문체들과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글쓰기야말로 한 개인의 일회적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마침내 프루스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마는 삶, 타인의 삶이나 자연의 뭇 삶들을 포착할 수 있는 어떤 문체, 다시 말해 ‘잃어버린 문체’를 발견할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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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원고 / 마르셀 프루스트


    

3. 글쓰기 : 허무한 과거를 충만한 현재로 바꾸는 힘


잃어버린 문체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 즉 현재의 문체에 갇힌 사유를 부수어야 했다. 프루스트는 곧바로 당대 프랑스 문학을 지배하던 사실주의 문체를 해부하기로 했다. 사실주의의 모토란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쓴다는 것. 하지만 플로베르나 에밀 졸라 같은 사실주의자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기존의 문학이 전혀 눈길을 두지 못했던 인체의 내부(『보바리 부인』의 외과수술 장면)나, 사회의 그늘(『목로주점』의 매춘부) 속까지 속속들이 붓을 들이대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작업을 객관적이며 공정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프루스트가 보기에 그들은 현실을 박제화시켜서 하나의 기념품으로 만드는 사람들, 다시 말해 주어진 삶, 어쩔 수 없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는 비관주의자들이었다.

사실주의에 반대하며, 프루스트는 하나의 소설을 기획했다. 먼저, 그는 ‘줄거리’라는 개념을 빼버리기로 했다.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어지는 사실주의 소설 문법은 한 인물의 인생을 그가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성취하게 되는가, 하는 결론(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최후의 영광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사건사고들은 애초에 삭제된다. 여기에 반해, 프루스트는 현재와 과거, 심지어 미래까지 동시에 배치하는 구성을 선택했다.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무작위적인 대화를 통해 예측불가능한 사건사고가 회상되는 전개방식을 구상했다. 또한 그는 이 회상의 내용을 주인공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 무상하게 흩어져 날아가 버린 과거 속에서 길어 올렸다. 주인공이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말이다.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기억한 과거들은 모두 영광과 원한 속에 박제된 것들, 즉 더 이상 생기롭게 부활할 수 없는 죽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놓쳐버린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망각된 과거가 영광스럽다면 상실감은 더 커질 것이고, 어리석고 추하다면 그것을 다시 직면하는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이 이처럼 ‘많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것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주인공은 깨닫게 될 것이다. 정숙했던 연인이 실은 바람둥이였고, 알고 보니 레즈비언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인생이 주는 수많은 교훈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프루스트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유한한 삶을 살지만, 그들이 살아낸 인생 자체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진리의 씨앗들을 품고 있다는 것. 프루스트는 그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이에 더하여,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들 중에서도 가장 사소하고 유치한 과거, 나쁜 과거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유태인 부르주아나 남색가 귀족, 속물적인 예술가들을 중요한 인물로 삼았다. 고상한 교육을 받은 선한 인간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장 비천한 장소와 불결한 도덕관 위에서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소심하고 가난한 시골 피아노 선생이 불멸의 소나타를 창조하고, 매춘부에게 아첨하는 천박한 화가가 회화사의 혁명을 이끌어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 프루스트에게 그것은 덧없이 사라지는 과거를 현재 속에서 충만하게 의미화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이 프루스트에게는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쓸 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시간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미래인가? 우리는 있었던 일을 쓰기 위해 펜을 들지만, 글을 쓰는 순간 모든 시간은 현재로 변용되고 새롭게 창조된다. 글쓰기야말로 모든 순간을 현재화시키면서 다른 존재들과 공명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삶, 이 끝없는 발견과 창조의 길에 ‘끝’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글을 쓸 때 비로소 우리는 무상한 시간의 흐름에 역행할 수 있다. 1909년, 프루스트는 자신이 허무한 시간의 본성과 이것을 극복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배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방법 

     

잃어버린 시간이란 무엇인가? 프루스트에게 그것은 허망하게 흘러가버리는 시간, 마침내는 망각되고 말 시간을 의미한다. 제1권「스완네 집 쪽으로」(1913)부터 제2권「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1919) 제3권「게르망트 쪽」(1920), 제4권「소돔과 고모라」(1921~1922), 제5권「갇힌 여인」(작가 사후, 1923), 제6권「사라진 알베르틴」(1925)까지의 회상들은 모두 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려내는 과정인 ‘되찾는 시간’이랄 수 있다. 이 되찾는 시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인생이 주는 여러 가지 배움들이다. 최종적으로 프루스트는 제7권 「되찾은 시간」(1927)에서 이런 배움들만으로 직조된 또 다른 시간의 의미를 밝힌다. 결코 죽음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며 거듭거듭 새로운 배움만을 태어나는 시간, 그것은 예술의 시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그러하듯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보여주는 세계는 지극히 평범하고 비루한 일상의 세계다. 사교계의 사소한 에피소드와 오해로 뒤범벅된 연애사건만이 끝없이 회상된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배움이 무한히 영글어가는 비옥한 대지임을 입증해보였다. 그렇게 프루스트는 생의 허무함에 몸서리치던 사람들에게 삶의 풍요로움을 되돌려 주었다.

하나의 작품이란 안경과도 같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안경을 쓰고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다시금 인생의 광대무변한 신비를 맛보기를 기도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이다!


“단 하나의 참된 여행, 회춘의 샘에서 목욕하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한 사람의 눈이 아닌 백 명이나 되는 남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 저마다가 보는 백 가지 세계, 그들 자신인 백 가지 세계를 보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엘스티르 한 사람, 뱅퇴유 한 사람 덕분에, 그러한 예술가들 덕분에 그게 가능해져 말 그대로 이 별에서 저 별로 마음껏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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