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미술가, 미술을 말하다>(1) 반 고흐, <반 고흐의 편지>


 

 “그림의 여백 혹은 분신 : <반 고흐의 편지> 읽기”



# 편지들, 반 고흐의 글쓰기 공간


  편지란 무엇인가? 편지는 왜 쓰는가? 너무 익숙해서 당혹스러울 수도, 아니면 ‘편지’라는 매체가 자못 클래식해서 낯설 수도 있는 질문. 모든 글이 그러하듯, 편지 또한 단순히 ‘메세지 전달’을 위한 글이 아니다. ‘소식을 알리는 글’이라는 뻣뻣한 사전적 의미보다는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이라는 노랫말의 뉘앙스가 편지의 본질에 더 근접해 있지 않을까. ‘소식을 알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때조차 거기엔 일종의 호소가, 쓰는 자의 어떤 내밀한 자기고백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편지는 수신자라는 특정 독자를 상정한, 송신자 자신의 은밀한 글쓰기 공간이랄 수 있겠다. 예술가들이 남긴 편지가 -아주 사적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 단순한 신변잡기로 취급될 수 없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특히, 편지 쓰기를 창작 못지않게 절실한 출구로 여겼던 몇몇 작가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예컨대, 카프카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편지들. 약혼자 펠리체에게 부쳐진 그의 편지들은 펠리체‘에게’ 말하지만 펠리체를 ‘향해’ 있지는 않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듯 보일 때조차 카프카는 끊임없이 자신을 분석하고 진단하며, 자기 삶의 스타일을 꾹꾹 새겨 넣는다. 급기야 “저는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1913.8.14)라고 토로할 때, 카프카는 약혼자에게(그러나 실은 자신에게) ‘결혼과 문학의 양립불가능성’을 확인시키는 중이다. 그러니까 카프카의 편지가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직 문학 자체다.

  반 고흐의 편지들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무려 800통이 넘는 그의 편지들은 수신자가 따로 있지만(그 중 대부분은 동 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다) 사실상 삶과 예술을 ‘향한’ 자기고백이다. 세속의 욕망(부, 명예)과 예술은 양립불가능하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자 반 고흐 자신이 요약한 미술사, 무엇보다도 ‘삶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전망의 펼쳐짐. 그게 반 고흐의 편지들이다. 그의 그림이 '말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의 육화(肉化)라면, 그의 편지들은 그의 그림이 말하지 않고 남겨 놓은 여백, 혹은 그림의 분신이라 할 것이다. 단언컨대, 반 고흐가 남긴 편지는 어떤 예술론보다도 심오하고 엄밀한 예술론이며, 독자를 ‘반 고흐’라는 세계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길들이다.


 편지들.jpg

 =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


#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끈기뿐이다”


“의욕적으로 일하려면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거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 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1884.10) 


  반 고흐의 그림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성의 없이 빨리, 계획이나 훈련 없이 즉흥적으로 그려졌다는 판단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광기의 우연’이라고 서둘러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의 편지를 읽는 동안 이런 판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힘든 노동과 딱딱한 계산을 병행하는 일”임을 수차례 강조하던 반 고흐의 허를 찌르는 덕담 한 마디! -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1888.7)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 반 고흐에 따르면, 예술가는 ‘무언가를 찾은 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온전하게 찾아낼 때까지 노력하는 자”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끈질긴 작업과 지속적 관찰, 타인의 칭찬과 비난에 대한 무관심. 이게 반 고흐가 말하는 예술가의 지표들이다. 반 고흐는 쓴다. 우울증과 비관론은 소위 ‘문명인’의 병이라고. 타인의 견해에 휩쓸려 마음의 평정을 잃은 자들만이 약국에서 약을 찾는다고.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위대함은 하나도 없으며, 지속적이고 끈기 있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작업하는 것만이 예술가가 누리는 특권이라고. 우리가 ‘우울과 비관의 예술가’라고 게으르게 단정짓는 반 고흐의 진면목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신경증이나 정신병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것은 삶의 과정이 중단될 때 사람들이 떨어지는 정신적 나락상태로, 이 상태에서는 위대한 일은커녕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고 한 줄의 획도 그을 수 없다. 반 고흐는 병에 의지해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극심한 발작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중지됨’을 그는 냉철하게 응시했다. 문제는 ‘과정의 중단’이지 병 자체가 아니라는 것. 이처럼 그는 자신의 병을 ‘통해’ 예술가의 색다른 건강상태에 도달했고, 병이 깊어질수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절실해짐을 느꼈다. 그림 이외의 것에 대한 일체의 무관심, 세계에 대한 지독하고 집요한 관찰, 대상을 그리는 순간의 놀라운 자기망각. 사람들에게 이것은 단지 ‘병’이었지만, 반 고흐에게 그것은 세계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자 치유의 과정이었다. 반 고흐는 이 ‘병’ 덕택에 매번 “자신이 보고 들은 것으로부터 두 눈이 붉게 물들고 고막이 뚫린 채” 되돌아왔다. 반 고흐의 편지, 그것은 예술가의 엄밀한 ‘건강검진표’다.


#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움켜쥐는가. 캔버스에 남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반 고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답도 그의 편지 속에 있다. 감각을 그리기!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 도덕성이나 교훈의 결여를 비판하는 독자들에 대한 플로베르의 항변 역시 그러했다. “나는 항상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고자 했다.” 나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려 했던 게 아니다! 문학에서든 회화에서든, 이것이 문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속에 가을 저녁의 느낌, 신비롭고 소중한 분위기가 스며들기 전에는 떠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인상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강하고 흔들림 없는 붓질 몇 번으로 그 특징을 한 번에 집어넣으면서 재빨리 그려야 했다... 뿌리와 줄기는 튜브에서 짜내면서 바로 모양을 만들고 약간의 붓질로 다듬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나무들이 그림 속에 서 있다. 그림 안에서 솟아오르고 그림 속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서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 앞에 하얀 캔버스를 놓고 앉아 있었는데... 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것을 빠른 속도로 받아 적었다. 내가 그렇게 받아 적은 것은 판독할 수 없는 단어와 실수, 결함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숲이나 너도밤나무, 여러 인물들이 나에게 들려준 것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준 방법이나 체계 안에서 습득한 인습적인 언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 언어다.”(1882..9.3)


  붓을 한 번 움직이는 일, 반 고흐에게 그것은 엄밀한 계산과 그리는 노동으로 단련된 몸이 만들어내는 우연이다. 화가는 바로 그 ‘한번의 붓질’을 위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잊고 세계로 투신(投身)한다. 그런 다음에야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등의 빈정거림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법. ‘엄밀하고 강렬한’ 감각을 그리기 위해 반 고흐가 집중한 것은 색채였다. 색, 반 고흐에게 그것은 회화 자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함으로써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1888.9.3)이야말로 회화가 구현해야 할 절대적 리얼리티다.

  반 고흐는 세계를 색으로 읽어낸다. 예컨대 여기에 책상이, 그 위에 책과 화분이, 그 위로는 하늘이.... 하는 식으로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를, 그는 노란색 덩어리와 초록색 덩어리, 그 둘을 화해시키는 검은색의 띠... 같은 방식으로 감각한다. 스케치를 그리고, 그 밑으로 스케치를 채울 색채들을 나열하는 반 고흐의 편지를 읽는 내내 우리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지각과 판단이 붕괴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는 것을 넘어, 순간적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라! 색채 에너지로 충만한 세계의 심장을 감각하라! 반 고흐의 편지, 그것은 자신을 관통하는 모든 힘들에 촉발된 어떤 신체의 찬란한 실험보고서다.


 van-gogh1.jpg  


“<씨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향토색이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1888.6.18. 베르나르에게)

 025씨뿌리는사람2,1888.jpg


#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구원과 같다.”


“우리가 용감하다면 고통과 죽음을 완벽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와 자기애를 깨끗이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런 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리고 우리 삶을 만드는 모든 것, 네가 원한다면 인공적인 것이라 불러도 좋은 그 모든 것을 접하고 싶다.”(1889.9.7) 


  반 고흐의 편지를 읽은 이라면, 그의 삶이 불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불행할 수 있는 어떤 ‘객관적 여건’도 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에는 충분치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한 가지, 그가 고독했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동생 테오가 그를 후원해주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형의 예술을 진심으로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난한 화가들과 함께 살면서 평생토록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화가공동체’를 꿈꾸었지만, 어떤 화가도 반 고흐와 함께 그 유토피아를 실험하고자 하지 않았다. 동생에게 형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고, 동료 화가들에게 반 고흐는 기본도 모르는 괴짜에 불과했으며, 대중에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미치광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긴,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느니 차라리 실패하고 비난받는 쪽을 택하겠다던 그가 아닌가. 반 고흐는 자신이 부모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걸리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큰, 불결한 개”에 지나지 않음을 일찌감치 시인했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는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1883.12.15)라고.

  그는 묻는다. 어쩌면 이 세계는 신이 망쳐버린 습작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더 좋은 작품을 만들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을까, 신도 이 습작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수고를 했을 테고, 그렇다면 그것이 신의 선량함이 아닐까, 라고. 수많은 방식으로 시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망쳐본 화가만이 자신의 실수를 긍정할 수 있는 법이다. 화가의 윤리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살아가는 자에게 산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이유이듯, 화가에게는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된다는 것. 하여 반 고흐는 그 짧은 생애를 살면서 최선을 다해 그렸다. 그리는 것만이 그가 주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권리였으므로. 때문에 그는 거리낌 없이 관습의 장막을 찢을 수 있었고, 대중의 반응이나 비평가들의 젠체하는 조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 작가의 작품이 그가 살아온 삶의 결들을 드러낸다면, 바로 이런 식이 아닐는지.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작업에 대한 열의로 가득차 있다. 이것이 회복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들라크루아는 ‘난 이도 다 빠져 버리고 숨도 제대로 못 쉴 때가 되어서야 그림을 발견했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그 연장선상에 있는 어떤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내 슬픈 병도 아주 느리긴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열의를 갖고 작업하게 해주거든. 어쩌면 천천히 오래 일한다는 게 숨은 열쇠인지도 모르지. 요즘은 내가 아프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화가라는 초라한 직업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1889.5)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을지도 모르는 요양원 시기. 반 고흐는 "화가라는 초라한 직업"을 이토록 눈부시게 긍정한다. “삶의 역량은 각각의 불안정한 조합을 통해 존재 속에 비할 데 없는 힘, 끈기, 투지를 가지고 자신을 긍정한다”(질 들뢰즈)고 했던가. 느끼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철벽. 그걸 넘을 수 없다면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서라도 벽을 통과해야 한다는 반 고흐의 태도에서는 어떤 숭고한 종교성이 배어나온다. 살아가는 자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아프면 아픈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림을 그리는 자 역시 어떻게든 그려야 한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것이 무력함을 알면서도, 인내를 가지고, 그저 그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 단호한 저항을 나는 알지 못한다.  반 고흐의 편지들, 그것은 그의 삶들로 구성된, 마치 삶 그 자체와도 같은, 별이 빛나는 하늘이다.                       



  


* [와글와글 미술]은 미술의 세계를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지도가 되어줄 만한 텍스트를 소개하는 섹션입니다. 이 섹션에서는 텍스트를 크게 두 주제로 나눠 번갈아 소개할 예정입니다.

1) ‘미술가, 미술을 말하다’ : 미술가들의 육성을 담은 인터뷰, 일기, 자서전, 편지, 작업노트 등

2) ‘미술의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 미술과 접속하여 미술을 새롭게 사유하기를 시도했던 미술의 친구들(철학자, 작가, 역사가)이 남긴 텍스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여기는 규문의 글쓰기 공간 "와글와글"입니다~ jerry 2013.10.22 23374
22 [와글와글 문학]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 file 수경 2014.09.25 6926
21 [와글와글 문학]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 file 오선민 2014.07.15 4184
20 [와글와글 고전] 승조, <조론> 6 file 유혜경 2014.06.25 7518
19 [와글와글 문학]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file 수경 2014.05.08 9660
18 [와글와글 고전] 장재,『정몽正蒙』 2 file 윤차장 2014.04.14 9512
17 [와글와글 미술] 폴 세잔, [세잔과의 대화] 1 file 채운 2014.04.01 11718
16 [와글와글 문학] 브램 스토커,『드라큘라』 file 혜선 2014.03.24 16212
15 [와글와글 고전] 대혜종고, 선 스승의 편지 5 file 김태욱 2014.03.17 6162
14 [와글와글 문학] 다니엘 디포_로빈슨 크루소 file 수경 2014.03.02 8941
13 [와글와글 고전] 세친,『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file jerry 2014.02.24 21896
12 [와글와글 미술] 앙또냉 아르또,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file 채운 2014.02.19 7263
11 [와글와글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file 오선민 2014.02.10 13167
10 [와글와글 고전] 묵자, 공동체의 힘으로 세상과 맞짱 뜬 반전주의자 file 윤차장 2014.01.28 21294
» [와글와글 미술] 반 고흐의 편지 / 채운 file jerry 2014.01.20 16238
8 [오늘의 사색] 열풍 채운 2014.01.18 41628
7 [와글와글 고전] 『열자列子』, 분별적 사유에 대한 환상적 조롱 file jerry 2014.01.12 153027
6 [와글와글 문학]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file 수경 2014.01.05 183707
5 [오늘의 사색] 대당서역기 채운 2013.12.17 78643
4 [오늘의 사색] 반딧불의 잔존 채운 2013.11.25 191704
3 [오늘의 사색] 열자 채운 2013.11.25 171786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