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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 2부 정리14~23까지 읽었습니다.

이번 주 주제는 '상상'이었죠.  이 키워드를 탐구하기 위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스피노자는 인간의 인식을 설명할 때 왜 상상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현재 통용되는 언어로 말하자면, 인간 신체의 변용(이것의 관념이 외부의 물체를 우리에게 있어 현존하는 것으로 나타낸다)은 비록 사물의 형태를 재현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물의 심상(이미지)'이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이런 식으로 물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정신이 [사물을] 상상한다고 말할 것이다."(p.123)


일단 이것만 기억합시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의 인식은 감각과 정서, 욕망 등이 뒤엉킨 무엇이라는 것.

데카르트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서구 철학자들은 주체가 대상(물자체)을 투명하게 인식하는 게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스피노자에게 인식은 대상과 일치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물의 심상(이미지)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게 아닙니다. 自性이 없는(空한) 대상에 자의적으로 어떤 실체성을 부여하고, 그걸 기억하고 곱씹으며 그것이 마치 대상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 뿐입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신은 변용된 신체에 대한 관념일 뿐임을 강조합니다. 정신은 신체에 비해 더 고결하고 더 높은 위계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신체와 외부 대상이 만나 일으키는 작용-반작용 운동을 통해서만 무엇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이미 새겨져 있는 질서 안에서 대상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언어적 환경이나 생활 방식에 따라 같은 걸 봐도 우린 얼마든지 서로 다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예를 듭니다. 모래에 새겨진 말의 발자국을 보자마자 농부와 군인은 떠올리는 게 다릅니다. 군인은 말-기사-전쟁-(....)으로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농부는 말-쟁기-논밭-(...)으로 생각을 전개시킵니다. 이로써 보건대 인식과 대상은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욕망하고 느끼는 대로 대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물체와의 작용-반작용을 통해 변용된 신체를 통해 절단된 물체의 단면만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단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기억 또한 객관적 과거의 정보가 아닙니다. 우리는 신체와 신체의 부딪힘을 통해 형성된 관념을 자기 나름대로 부풀리고 연관지으며 계속해서 조작된 정보들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헤어진 연인이 똑같은 사랑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똑같은 헤어짐을 경험하는 것도 아닌 것처럼. 같은 사건을 모두 다르게 경험하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우리를 이상하고 오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기 경험을 보편화 시켜 얘기하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한계 혹은 위험성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단편적인 인식을 통해 드러난 세상의 단면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실체화하는 것이죠. 자신의 경험을 맹신하고, 상식을 신봉하며 예속을 욕망하며, 그런 자기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노예적으로 사는 삶이 인간사의 전부라고 믿는 것.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스피노자에게 인간의 단편적 인식은 오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상상은 틀린 게 아닙니다. 스피노자는 다만 언어와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의 질서를 철학적으로(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인간에게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번뇌 속에 깨달음이 있다고, 찌질한 인간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불교적 사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상상의 질서에 예속된 채 살 것인가, 그 예속을 지각하고 깨달음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스피노자와 불교에 똑같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전환시키는 인간의 역량에 초점을 두는 사유들이라는 것. 


다음 주에는 2부 정리 24~31까지 읽어 오시고, 상상&부적합한 관념을 주제로 공통과제 써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태람이 준비하겠습니다. 


담주에는 혜화동 연구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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