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청년들이 유달리 쉽게 죽은 해인 듯하다. “천 리 밖이면 풍습이 다르고, 백 리 밖이면 습속이 다른 법이다.” 여기서는 평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저쪽에서는 끓는 기름에 손가락을 지지는 듯이 과격한 것으로 간주된다. 오늘은 정당한 것이 내일이면 범죄로 바뀌어 등나무줄기로 볼기를 맞는다. 만약 청년이 시골에서 처음 왔다면 틀림없이 시달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금은 이러한 제도가 유행하고 있나 보다, 라고 여길 것이다. 나로서는 재작년에 이미 마흔다섯 살이 되었고, 이미 ‘몸과 마음이 병들어서’ 그렇게까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우환을 예방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남들의 의견이고, 나로서는 그래도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 감히 바라건대, ‘신시대의 청년’들이 양해해 준다면 다행이겠다. …… 나는 청년들에게 한 가지 경고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후에 ‘정말 탄식하는’ 글만을 쓰면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새로운 예를 잘 연구해 보지 않았지만, 청대의 과거 예를 보더라도 탄식을 허락한 것은 바로 고인(古人)을 우대하려는 데 대한 것이었으며 그 당대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노예가 모두 탄식하면, 비록 큰 해는 없다 하더라도 주인이 보기에 어쨌든 언짢기 때문이다. 반드시 러셀이 칭찬했던 항저우의 가마꾼처럼 늘 히죽히죽 웃어야 하는 것이다. (<‘격렬’을 말하다> 중)



: 생로병사를 경험한다는 것 외에 무엇을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 좋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꿔야 할 유토피아라는 건 우리의 상상에나 존재하는 허깨비가 아닐까. 자기의 생각, 이념, 사상, 생활 방식 등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런 사람이 어떤 글을 썼다면 나는 그 글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혁명, 진보, 변혁, 개조 등의 말이 모두 물거품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어느 혁명가가 있다면, 그는 실패한 자일까. 물론 그의 말문은 막혀 버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써지지 않을 때, 어떤 것도 쓸 수 없을 때, 자기가 하는 말이 다 헛소리 같을 때 우리의 공부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톨스토이가 그러했듯,  회의하고 또 회의하면서, 無를 경험한 자가 바로 그 공허 속에서 글다운 글을 최초로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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