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통신


소봉 형

 

  며칠 전에 편지를 받았지만 맡은 일을 마무리하는 데 바빠서 즉시 회신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간신히 하문을 떠나 배 위에 있습니다. 배는 떠나고 있지만 어디 바다 위인지는 모릅니다. 종합컨대, 한편으로는 더없이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한편으로는 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람과 파도가 일지 않아 마치 장강(長江)의 배 위에 있는 듯합니다. 물론 약간의 흔들림은 있지만 바다에서 이 정도로는 요동치는 것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육상의 바람과 파도가 이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중략)

  나의 처세는 이렇습니다. 스스로 충분히 양보하겠다고 여기면 사람들이 신문을 발간해도 나는 결코 제 발로 가서 투고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회의를 열 때 나는 결코 제 발로 가서 연설하지는 않습니다. 억지로 가라고 하면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반드시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는 차라리 죽은 시체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내가 입을 열어 반드시 말을 해야 하며, 말 또한 반드시 교장의 뜻에 합치되어야 합니다. 내가 남이 아니니 어찌 남의 뜻을 알겠습니까? “그 뜻을 미리 헤아리는” 묘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작년 이래로 몹시 사악해졌습니다. 어쩌면 진보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 방면으로부터 공격을 받더라도 이젠 상처도 받지 않고, 더 이상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합니다. 가령 내게 죄를 씌우더라도 조금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낡은 세상물정과 새로운 세상물정을 여러 번 경험한 뒤에 비로소 얻은 것입니다. 나는 이젠 여러 가지를 신경쓸 수 없게 되었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까지 양보했다가 나서서 그들과 충돌하고, 그들을 멸시하고, 또한 그들의 멸시를 멸시합니다.

  내 편지는 이것으로 끝맺으려 합니다. 바다 위의 달빛은 정말로 밝습니다. 파도 위에 커다란 은빛비늘이 비쳐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밖에 벽옥 같은 바닷물은 아주 따스하고 부드러운 듯합니다. 이런 것이 사람을 익사시킬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놓아도 좋습니다. 이건 농담이니 내가 바다로 뛰어들 것이라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바다에 뛰어들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노신. 1월 16일 밤, 바다 위에서   


: 노신의 편지는 "나는 바다에 뛰어들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흔들리는 바다 위, 비단 장사를 한다는 옆 사람이 잠들어 전등을 독차지 하고 그는 편지를 썼다.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웠다. 한 글자 한 글자 신경쓰지 않으면 마치 글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쓰게 될 것이다. 무언가 생각날 때마다 그는 벽옥 같은 바닷물과, 멀리 떠 있는 섬들을 보았다. 따스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문득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어졌다.     

 하문 대학에서의 일들이 머리에 스쳤다. 그곳에서는 떠나기 전부터 그에 관한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었다. 학생들을 조장했다느니, 북경에서 올 때부터 소란을 피우려는 목적이 있었다느니 어쩌니. 학생들은 공부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교장, 입만 열면 공자를 말하던 그는 노신을 정중히 대해줬었다. 송별회도 두 번이나 열어줬다. 그러나 노신이 연설할 때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면전에서는 성의를 다하는 체했지만 뒷전에서는 비웃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노신은 그가 유령처럼 자신의 등 위에서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중한 태도와 비웃음이 뒤섞여 괴상한 얼굴을 한 교장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떠나왔지만 아직 머물러 있는 듯한 찜찜함, 움직이고 있지만 멈춰선 듯한 막막함 속에서 노신은 이 편지를 쓰고 있었다.  머릿 속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저기 따뜻하고 부드러운 곳으로 숨고 싶은 마음도 도둑처럼 일어났다. 그것이 헛된 망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래서 굳이 "뛰어들 마음이 전혀 없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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