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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의 중도철학, 중국불교 대장정을 준비하다 : 승조,<조론肇論>"




    승조는 누구인가?


   승조(僧肇: 384~415)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인도 승려 용수(龍樹: 약 150-250)의 중관불교를 중국에 전파하는데 공헌한 승려로,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북서지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의 글을 대필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에도 타고난 명민함으로 고전과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현미(玄微)한 이치를 좋아하여” 노자와 장자의 심원한 형이상학에 심취했지만, “죽음과 해탈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이 많지만, 어디까지가 정확한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옛 성인들이 떠나신 지 오래되어 물을 수도 없어 경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어렵다”고 생각하던 중, 오(吳)나라의 역경승 지겸(支謙)이 번역한 <유마경>을 읽고 기쁨에 넘쳐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다. 여기에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는 출가하여 불교경전을 열심히 탐구하였다. 당시 불경번역으로 유명했던 구자국의 불교승려 구마라집(343-413)의 문하에 들어가 불경을 한역하면서 불교의 이치를 터득했고, 대승불교의 정교한 철학적 체계를 학습했다. 이후 구마라집을 따라 장안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經, 論을 번역하며 역경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승조법사.JPG         구마라집.JPG

             승조 법사                                                                                                            구마라집



   불교,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1세기 중반이지만 중국의 지식인 사이에서 확산된 것은 동진 이후로, 처음 유입된 이래 거의 3백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 시기에 불교에 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대(漢代)에는 대제국의 통일과 함께 정치기운이 고조되면서 유교가 국가정치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대의 관리들은 조정에 대한 충성을 통해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시대가 그러하듯, 시간이 흐를수록 관직은 문벌귀족이 독점했고, 복잡해진 정치현실로 인해 일신을 보존하기가 어려워지자 지식인들은 점차 정치를 멀리 하게 된다. 현실정치로부터 거리를 둔 지식인들은 문화와 예술 및 철학에 심취했는데, 산수화의 발생, 죽림칠현의 출현과 영원불변의 도를 추구하는 노장사상의 성행이 이를 말해준다. 또 중화의식으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를 오랑캐문화로 차별하는 인식이 있었는데, 서진 말엽에 흉노족이 일으킨 영가의 난을 계기로 중화의식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이제 문학, 예술, 철학, 종교에 마음을 쏟으며 삶의 의미를 찾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때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이제 막 번역되기 시작한 불교였다.

   그러나 이질적인 개념을 수용할 때는 기존의 사고와 어휘의 틀 안에서 이해하기 마련이다. 외래 사상인 불교의 논리가 단번에 이해되기란 불가능했고, 때문에 이 시기의 불교는 우선 중국 고유의 사상을 매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는 황로신선학의 방술 사상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황로 방술의 언어로 불교를 이해하고자 했다. 예컨대, 불교의 ‘부처’는 노자의 ‘신선’으로, ‘열반’은 ‘무위’로 번역되었다. 불교에서는 애착과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과욕(寡欲)과 무욕(無欲)을 주장하는 노자의 사상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아울러 불교의 내세응보설은 당시 유행하던 영혼불멸사상으로 대체되었다.

   당시 육조시대의 지식인들은 노장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노장의 無를 매개로 불교의 空을 이해했던 것이다. 이처럼 불교도들이 불교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문헌, 특히 도가문헌에 있는 기존의 개념을 차용하는 것을 일컬어 ‘격의(格義)’라고 한다. 노장으로 불교사상을 해석하는 방식은 이 시대의 풍조였다. 승조가 살았던 위진 시대에는 위진 현학(玄學), 즉 위진 시대를 풍미하던 노장학의 용어로 해석된 불교 철학(격의불교)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현학(玄學)에서 ‘현’은 <노자> 1장에 나오는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심원하고 심오함을 뜻한다. 즉 현학이란 심오하여 헤아릴 수 없는 학문을 말한다. 위진 현학은 ‘無’를 근본으로 하는 노자의 철학사상을 이어, 세계의 본체는 無이며 현상세계의 구체적 존재물(有)은 단지 이 본체의 외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無를 본체로 삼고 有를 無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는 사상은 불교의 ‘성공가유(性空假有)’, ‘일체개공(一切皆空)’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노자는 세계의 본원을 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승려들은 노자의 본무(本無) 개념으로 불교의 진여(眞如)를 해석하고 “모든 것은 공(空)이다”를 ‘무가 근본이다’라는 노자의 사상과 동일한 것으로 본 것이다.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승조의 <조론>을 기다려야 했다. <조론>에 주석을 붙인 감산대사는 <조론약주(肇論略注)>의 서문에서 승조의 의도를 밝힌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노장학에서 말하는 허무주의 담론을 숭상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제자인 사문(沙門)들까지도 이를 고상하게 여기면서 허무주의를 으뜸의 근간으로 여기고 이로써 불교의 의미를 담론하면서 각자 자기의 견해를 따라 종파를 수립하였다. 조공은 대승의 도가 세상에 밝혀지지 못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겼다. 그 때문에 불교의 현상론으로 <물불천론>, 본질론으로서 <부진공론>, 인식론으로서 <반야무지론>, 인식의 결과론으로서 <열반무명론>을 지어 그들의 빗나간 집착을 타파하였다. 이것이 논리를 수립한 근본 의도이다."



   승조 역시 여전히 노장현학의 언어를 버리지는 못했지만, 중관철학의 논법으로 불교의 대의를 밝힌 승조의 <조론> 덕분에 중국인들은 마침내 불교의 공(空)사상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조론(肇論), 일심중도(一心中道)를 논하다


   <조론>은 승조가 20대에 걸쳐 집필한 논문집으로,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를 논한 <물불천론(物不遷論)>,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논한 <부진공론(不眞空論)>, 현상과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론인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 깨달음의 결과를 논한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 총 4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조는 <물불천론>에서 현상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전제를 지적한다. 하나는 그것들이 정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가 동일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는 동일하지 않지만 현재의 존재는 과거의 존재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動과 靜의 이원론을 가지고 현상을 파악한다. 그러나 승조는 動도 靜도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다.



"제법에는 현재가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가거나 과거의 시간이 현재로 흘러옴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면서 전변함도 없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사는 몸도 처음 겪는 새로운 몸이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몸, 세계, 사물, 시간, 인과 모두 천류(遷流)하지 않는다. 모든 찰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당시 관직을 포기하고 여산 동림사에서 수행 중이던 유유민(劉遺民. 본명은 유정지劉程之, 354~410)은 승조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품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어떻게 반야이면서 무지인가, 어떻게 주관적으로 진실한 옮음이 있는데도 옮음이 아닐 수 있으며, ‘일치하니 일치함이 없고, 옳아도 옳음이 없다’고 하는가. 한참 후에, 승조는 생각과 언어에 붙들린 유유민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비유하고 말한 것은 실유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아예 있지 않았음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비무라는 말은 단절된 무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무가 아닌 유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유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실유(實有)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실재도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니고, 무가 아니라는 말도 단절된 무가 아님을 말한 것인데, 무가 아니라고 하면 곧장 유를 생각하고, 유가 아니라고 하면 곧장 무에 떨어지는 이분법을 지적한 것. 이런 사고의 메커니즘을 통해 ‘생각하는 나’는 점점 더 뚜렷해지고 강화된다. 승조가 격파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언어로 고정된 ‘그 무엇’이라는 실체를 부정함으로써 우리의 관습적 사유구조를 깨고 싶어 한 것이다. 분별적인 앎에 갇혀 세계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향해, 이 실상이 바로 空이요, 공을 직관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임을 깨우치려 했던 것이다.

  또한 <부진공론>에서는 자신의 공관(空觀)을 밝히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인연의 결합으로 생겨나며 인연조건이 사라지면 없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술로 지어진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유(非有)다. 그러나 마술로 생겨난 사람은 비록 실재하지는 않으나 환인(幻人)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무(非無)다. 이런 원리를 모든 존재에까지 확대하여 승조는 모든 것은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니라는 중도(中道)에 도달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반야무지론>에서도 반복된다.

   <반야무지론>의 무지(無知)는 지(知)가 없는 무식한 상태가 아니라 지식의 본성인 언어적 사유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적 지혜를 뜻한다. 이런 무분별적 지혜를 체득할 때라야 부처님과 같은 일체지자(一切智者)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일체지자의 경지가 열반이기 때문에 열반이 곧 ‘무명’이라는 것이다.



"유는 무에 상대적으로 관계하여 있는 것이고 무의 관념은 유 그것과 관계 하에 성립된다. 따라서 유는 무로부터 생기고 무는 유로부터 생긴다. 유를 떠나면 무는 성립될 수 없고 무를 떠날 경우 유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나아가서 말하면 유무의 차별을 설정하는 짓은 삿된 견해이고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보면 자기와 저것은 둘이 아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은 나와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고 만물은 나 자신과 한 몸이다. "



   승조에게 無는 유의 부정이 아니라 유무의 차별 자체를 부정하는 개념이자 모든 상대적 차별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이 부정의 극치는 곧 절대무차별의 경지로서, 여기 이르러 “저것과 이것의 구분은 무너지고 사물과 자기는 하나가 되어 고요히 형상의 흔적이 없어진다. 곧 열반에 이른다.” 이것이 승조의 공관(空觀)이다. 이러한 논리는 <장자> 의 ‘만물은 하나’라는 주장과 아주 흡사하다. 장자는 모든 대립과 차별은 인위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세계는 평등하며 만물은 하나라고 주장했다. 승조 이전의 불교현학이 주로 현학으로 불교를 해석하거나 노자를 매개로 空에 접근한 데 반해, 승조는 반야경전에 입각하여 만물은 하나라는 장자의 사상을 이해했으니, 승조에 이르러서야 반야공과 함께 장자의 '만물일체'도 비로소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 중국에 안착하며 대장정을 준비하다 


   나의 언어로 내가 이해한 세상을 설명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승조는 인도에서 들어온 중관철학을 깊이 있게 깨달아 당대(當代)의 현학적 사유를 돌파했다. '오랑캐의 종교’가 현학과 유학을 누르고 수당시대에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승조에게 힘입은 바 크다. 텍스트는 시대의 열망을 반영한다. 승조의 <조론>은 난세에 의탁할 곳을 찾던 지식인의 욕망에 부응하며 불교철학이 중국에 온전히 안착하게 만들었다.

  승조는 3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에 따르면, 그를 등용하고자 하는 황제의 권유를 거부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회 없는 삶이었으리라.



"사대(四大)란 애초 주인이 없는 것이요, 오온은 본디 공한데/ 하얀 칼날로 목을 치는 것쯤이야 한낱 봄바람을 베는 것에 불과하리라(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將頭臨白刃 恰似斬春風)."



  승조가 마지막으로 남긴 게송이다.

  • jerry 2014.06.25 01:50

    드뎌! 감축드리옵니다!!! 감동이옵니다! 선생님 조론 다 외웠겠어요...!!!!

  • 효진 2014.06.25 02:11

    불교 에세이 땜에 고민 중이다 보니 샘 글이 눈에 확확 들어오네요. 글 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근데 꽤 오랫동안 읽고 쓰신 걸로 아는데....이러다 성불하시는 건 아닌지...ㅎㅎrabbit%20(19).gif

  • 윤차장 2014.06.25 06:54

    오오~~드뎌드뎌!! 역쉬 혜경샘!! 오랜 시간 공들여 쓰신만큼 깊은 맛이 우러나는 멋진 글! 오래전 읽은 조론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살짝 다음 글을 기대해도 될까요? ^^

  • 영수 2014.06.25 14:16
    혜경샘, 멋져요. 2년 전에 읽은 조론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시네요^^
  • 공가 2014.06.25 17:19
    난 샘 쓰신거 보니까, 조론 그거 꼴도 보기 싫은데요~ㅋ 다음은 영수샘 차례인가여? 고생많으셨습니다, 혜경샘. 에세이도 이렇다시 멋지게 써 보아요. 우리....
  • 현옥 2014.06.25 23:52

    저도 자알 읽고 갑니다요! 저는 조론을 듣도보도 못했지만 그래도 알아듣겠으니 훌륭하게 쓰신 거 맞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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