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적대의 역설적 이중주

-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의 주인공 부부는 손님을 위해 기꺼이 식사를 차려주고 흐느끼는 그 어깨를 감싸 안아준다. 거기까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손님이 앞길 창창한 내 아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아들의 연인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용서할 수 없다. 그때 부부는 현관문을 닫아건다. 오직 주말에 그 집에서 식사하는 게 낙이었던 외로운 손님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어쩔 수 없다.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손님은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두고두고 사람들을 괴롭혀왔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깊은 새벽 누군가 잠든 당신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천사라도 반가이 맞이하기 힘든 시각에 느닷없이 등장한 외부인. 당신은 기꺼이 문을 열어 그를 환대할 것인가? 못들은 척 베개 위에 얼굴을 파묻을 것인가? 아니면 야구배트를 움켜쥔 채 숨죽일 것인가? 사랑과 자비를 설교하는 신을 따라 살고 싶은 맘 없는 것도 아니지만, 당장의 안위를 생각하자니 성가시고 화가 치민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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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의 상인> 공연(First Folio Theatre) 중 한 장면



누가 이방인인가?


    1594년 6월 엘리자베스 여왕 시해죄로 교수형을 당한 한 남자가 있었다. 여왕의 주치의였던 그는 형장에서 죽기 직전까지 구경꾼들의 욕설과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그를 향해 ‘마라노’라 외쳤다. 그건 기독교도로 개종한 유대인을 낮추어 부르는 이름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았던 이 사내는 개종 후에도 비웃음 속에서 차별대우를 감내해야 했고, 끝내 음모로 죽임당할 때까지 조롱거리가 되어야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당대 최고의 두 극작가가 훗날 각기 『몰타의 유대인』, 『베니스의 상인』을 발표했다. 전자는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 1564-1593)의 것, 후자는 셰익스피어의 것이다. 말로우는 사악한 유대인과 그에 못지않게 사악한 기독교도를 동시에 조롱하는 작품을 써냈으며, 셰익스피어는 유대인 샤일록이 당대의 사회적 산물임을 역설함으로써 반유대주의 담론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을 써냈다.

『 베니스의 상인』에서 우리는 기독교도들에게 개 취급을 받고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유대인 샤일록을 볼 수 있다. 달아난 딸보다도 사라진 다이아몬드 때문에 애통해하는 수전노의 면모라든지, 앤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받아내려다 실패하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수전노가 벌을 받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샤일록을 무시하는 앤토니오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유대인을 향한 당시 기독교도들의 소름 끼치는 증오심에 다름 아니다.


   샤일록: 앤토니오 선생님, 당신은 거래소에서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내 돈과 대금업을 비난했소이다. 저는 항상 어깨를 움츠릴 뿐 참을성을 갖고 견뎌왔습지요,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은 저희 족속의 표지이니까요. 당신은 저를 이교도, 사람의 목을 무는 살인견으로 부르고 내 유대인 망토에 침을 뱉었습죠. 그게 모두 제 돈을 제가 쓴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자, 그런데, 이제 보아하니 당신은 제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 모양이군요. 별일도 다 있지, 그래, 이제 제게 와서 ‘샤일록, 돈이 필요하오’라고 하시다니. 그런 말이 나오나요? 내 턱수염에다 가래침을 뱉고 문지방 너머로 낯선 개를 걷어차듯 저를 찬 당신이 이제 돈을 간청하고 있군요. (…)


   앤토니오: 나는 또다시 그대를 그렇게 부르고 싶소. 다시 침을 뱉고 다시 걷어차고 싶소. 만약 그대가 그 돈을 빌려주려거든 친구에게 빌려주듯 빌려주지는 마오. 우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생식력이 없는 쇠붙이에 대한 이자를 친구에게 받겠소? 그러니 원수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1막 3장 중)


    이야기는 더 나아간다. 베니스에서 핍박받는 것이 비단 샤일록만이 아니라는 것은, 앤토니오의 친구가 사랑하는 여인 포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을 그녀가 거절하는 이유는 그들이 “악마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니까 유색인종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무어인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주장하는 포샤, 그리고 샤일록이 한 마리 개와 같다고 말하는 앤토니오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바로 베니스라는 사회가 ‘낯선 자(stranger)’를 규정하고 그를 대하는 방식이다. 베니스 사회의 구성원들은 묻고 또 묻는다. 누가 이방인인가? 저 이상한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실제 작품의 배경이자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영국은 아마도 위와 같은 문제로 몸살을 앓아야 했을 것이다. 오랜 내란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구교와 영국 국교 사이의 갈등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불안정한 왕권을 다잡기 위해 왕의 측근은 여왕의 신격화를 도모해야 했으며, 동인도 회사 설립 및 식민지 확장 정책으로 인해 국가 밖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충돌 사태가 빚어지는 중이었다. 쿨렁대는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울타리 내부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질문은 이 지점에서 반복해 울려 퍼진다. 누가 ‘우리’를 위협하는 이방인인가?


이방인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셰익스피어는 표면적으로는 반유대주의에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당시 영국에서 관객들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무대에 등장할 때면 야유를 퍼붓고, 재판을 통해 그가 몰락하는 순간에는 환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셰익스피어의 전략은 그러한 담론의 편견과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돈에 의해 지배되는 초기 자본주의 기독교 사회야말로 악랄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아닌가.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도의 뿌리 깊은 증오, 바로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원한과 악의의 감정을 심어준 게 아니던가.

    배신자 유다에 대한 증오는 그 얼마나 길고 모진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들은 자자손손 멸시의 대상이 된다. 물론 샤일록은 악독하고 매몰찬 인간이다. 하지만 기독교도들 역시 침 뱉고 발길질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종’들이다. 친구를 위해 자기 신체를 걸고 돈을 빌릴 정도로 애정 넘치는 앤토니오마저 유대인에 대해서라면 지팡이를 휘두르는 박해자가 아니던가. 사람들 사이에서 단 한 번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유대인’ 혹은 ‘고리대금업자’로 불려온 샤일록이 그간 키워온 수치심과 절망은 앤토니오를 향해 폭발한다.


    샤일록: 우리의 살은 찔러도 피가 나지 않소? 간질여도 우리는 웃지 않소? 독을 먹여도 우리는 죽지 않소?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우리는 복수하지 말란 말이오? 다른 모든 일에서도 당신들과 같은데 그 점에서도 같은 것은 뻔하지 않소. 만약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부당한 일을 한다면 기독교인의 겸양은 무엇이겠소? 복수요! 만약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부당한 짓을 행한다면 그의 관용은 무엇이겠소? 당연히, 복수요! 당신네들이 가르쳐준 악행을 나는 실천하겠소. (3막 1장 중)


    하지만 복수를 꿈 꾼 샤일록의 기도는 실패하고 만다. 대신 그는 ‘지혜로운’ 여인 포샤와 ‘자비로운’ 상인 앤토니오에 의해 기독교도로 개종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빼앗긴다. 그곳에서 기독교도는 자신의 자비심에 만족하고 굳건한 안전가옥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승리의 축배를 들지만, 법정에서 도망치듯 떠나버린 샤일록이 끝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법정에서 패배한 샤일록은 4막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발 이젠 보내주십시오. 몸이 편치를 않습니다.”라는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만다.

   “악마의 피부색”을 가진 흑인 노예들이나 돈에 미친 유대인을 제압하기 위해 앤토니오를 비롯한 기독교도들은 정의심과 지혜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건 전도(顚倒)된 의식이다. 검은 피부의 외국인이 잠정적 범죄자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우리가 누군가의 검은 피부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들의 수상함이 우리의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정의와 안전을 위해 그들을 타자화하는 순간 그들이 드디어 수상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어인과 유대인을 악당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우리’ 기독교도는 성곽을 높이 세우고 문을 걸어 잠글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타자로 만드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단일한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

    이처럼 앤토니오의 기독교 공동체는 닫힌 구조를 지향한다. 이웃 사랑? 이는 두껍게 쌓아 올린 벽 내부로의 출입을 허가받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일 뿐이다. 앤토니오는 샤일록을 개종시켜 ‘안’으로 받아들였지만, 이는 그들이 샤일록을 이웃으로 받아들였다는 표시가 아니다. 기독교도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샤일록의 돈과 종교)를 박탈함으로써 그를 격리하고 다루기 쉬운 존재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말할 수 없는 존재, 아무리 말해도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존재가 되어 베니스 안 어딘가에 유폐되는 것 외에 샤일록에게 남은 삶의 가능성은 없는 듯하다. 작품이 끝날 즈음 독자는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세계 어딘가에서 모든 것을 잃고 미쳐버린 샤일록이 수염을 휘날리며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광경을.


‘우리’들의 천국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기분 나쁜 희극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베니스의 상인』은 박해받는 유대인 샤일록 세계의 비극이자, 기독교 세계의 승리를 미심쩍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희극이라고. 말하자면 가장 불쾌한 희극, 혹은 비참한 희극! 굳게 닫힌 앤토니오의 ‘공동체’에서 관객이 느끼는 것은, 순수성을 위협하는 모든 낯선 것을 거부하고 신의 이름으로 적대와 증오를 표출하는 자들 속에 도사린 끔찍한 위험이다. 금욕과 자비심이 뒤섞인 기독교도들의 사랑은 닫힌 문 안에서 기괴한 괴물로 변신해 똬리를 틀고 있을 것만 같다.

    이렇듯 셰익스피어는 자기 시대의 이중성, 기독교도들의 욕망과 불안을 그려 보이고자 했다. 이제 우리에게로 그 화살을 돌려보자. ‘나름’ 양심적이고 ‘나름’ 정의로운 앤토니오가 그러했듯 우리도 세계를 이렇게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일조해 왔을 것이다. 나는 세금 꼬박꼬박 내는 성실한 국민이고,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시민이며, 심지어 투표도 한다. 나는 믿음직한 벗이자 다정한 반려자, 그리고 신 아래 신실한 한 마리 양이다. 내 가정과 사회,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 역시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샤일록은 우리에게 지금 이렇게 묻는다. 아는가? 안정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에 대해 닫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과 즐겁게 살고자 하는 당신의 욕망 뒤에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차별과 적대가 음화로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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